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킴브리 전쟁 (문단 편집) === [[베르첼리|베르켈라이]] 전투 === 기원전 101년, 테우토네스족과 암브로네스족이 전멸한 것을 모르고, 알프스 산맥을 넘어가던 킴브리족은 북이탈리아에 도착했다. 포 강 유역의 비옥한 평원에 도착한 킴브리족은 마침내 이곳에 정착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곧 마리우스가 이끄는 로마군이 도착하자 킴브리족은 사신을 보내 자신들은 정착하길 원할 뿐이며, 로마와 동맹을 맺을 용의도 있다고 말했다. 마리우스는 이전 집정관들과 마찬가지로 킴브리족의 제의를 거절하고, 베르켈라이에서 결전을 가지자고 최후 통첩을 보냈다. 그리하여 기원전 101년 7월 30일에 벌어진 '''베르켈라이 전투'''에서 로마군과 킴브리족의 결전이 벌어졌다. 킴브리족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기에 형편없는 무장과 무기에도 불구하고 사력을 다해 싸웠으나[* 이때 킴브리족 전사 즉 남자들은 [[연환계|서로 허리띠를 묶어서 전투에 임했다고 한다.]] 이러면 도저히 물러서거나 도망칠 수 없게 되니, 진짜로 죽음을 각오하고 로마군에 맞섰던 것이다.] 이미 게르만족을 면밀히 분석한 로마군의 집중 투창 공격과 압박 전술에 의해 킴브리족은 마침내 전멸하고 말았다. [[동반자살|전세가 기울자 후방에 있던 킴브리족의 여자들은 자식을 죽인 후 자결했다.]] 살아남은 어린이들은 [[검투사]] 노예로 팔려갔다. 이로써 12년 동안 서유럽을 종횡무진하던 게르만족의 대이주는 북이탈리아에서 소멸되는 결말을 맞이했다. [[분류:서게르만족]][[분류:로마 공화국의 대외 전쟁]][[분류:기원전 2세기]][[분류:지상전]]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